낯선 공간을 탐닉하는 카피라이터의 기록, 모든 요일의 여행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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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낯선 공간을 탐닉하는 카피라이터의 기록, 모든 요일의 여행 후기

by 워너듀 2023.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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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민철이 ‘기록하는 여행자’가 되어 자기만의 여행을 직조해가는 이야기다. 여행만큼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게 또 있을까. ‘여행’이라는 빛 아래에서는 ‘애써 외면했던 게으름이, 난데없는 것에 폭발하곤 하는 성질머리가, 떨칠 수 없는 모범생적 습관’까지,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나답다’고 믿었던 것들로부터 더욱 벗어나보는 건 어떨까. 익숙한 공간과 익숙한 시간에서, 익숙한 생각과 익숙한 행동만 해왔다면 말이다.

남자 이름이지만 엄연히 여자인 저자는 카피 한 줄 못 외우지만 엄연히 카피라이터이다. 그 흔한 공모전 한번 안 해보고 광고에 대해 아무것도모른다는 이유로, 잡다한 것들에 대해서는 어렴풋하게안다는 이유로 2005, 광고대행사 TBWA KOREA의 카피라이터가 됐다. 광고를 너무 몰라서, 기억력이 너무 지독해서 살아남기 위해 회의 시간에 치밀한 필기를 시작했고, 그 회의록을 바탕으로 2011, 우리 회의나 할까?라는 책을 냈다. 박웅현 CCO 팀에서 11년째 일하며 SK텔레콤 사람을 향합니다’, 네이버 세상의 모든 지식’ e편한세상 진심이 짓는다’, SK이노베이션 혁신을 혁신하다등의 캠페인에 참여했다. 15초라는 찰나의 시간을 위해 한 달이 넘게 고민하는 세계에서 하루하루 살고 있다. (리디북스 작가 소개 )

모든 요일의 기록에 이어 읽은 저자의 책이다. 읽으며 때론 공감했지만 나에 비해서 감성이 과한 부분이 있어서 부담스럽게 느껴질까 걱정도 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필요 없었다. 외부 환경에 대한 해석 없이 느낀 감각만을 간결하게 적는다면 자칫 밋밋해질 수 있다. 해석 없는 일차적 감각의 서술에서는 저자를 느낄 수 없다. 마치 돋보기를 사용하듯, 주어진 사건에 저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꼈는지 알아보는 것에 독서의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특히 유럽 여행을 많이 다녀온 듯 보였다. 책의 제목처럼 충실한 여행자로 보였다. 관광객이 아닌 여행객 말이다. 흔한 장소를 가기보다 테마를 잡아 그 테마에 집중하는 여행을 했다. 유명한 관광지를 다니고 사진을 남기는 일반적인 관광객의 모습이 아닌 여행객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림을 좋아하여 명화 관람 여행, 벽에 꽂혀 유럽의 이름 모를 동네의 벽을 보고 다닌 여행, 맥주를 마시기 위해 떠난 신혼여행 등 다채롭고 지루하지 않은 여행이었다. 그렇게 계획해 떠난 여행은 느긋했다. 저자의 말대로 어느 시간에 어디에 있을지 스스로 결정하는 여행은 자신이 선택한 곳에서 즐기고자 하는 것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여행지에서 바쁘게 돌아다녀야한다는 강박을 지니고 있던 저자가 차츰 여유를 찾고 작은 행복을 발견하기 시작하는 모습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피곤해지는 여행이 아닌 행복한 여행. 유용함이 아닌 무용함을 찾아 떠나는 여행. 결국 저자는 수많은 여행 후에 여행자의 마음가짐을 배운다. 그리고 살고 있는 동네의 여행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여행지에서의 마음가짐을 일상생활에서도 가진다면, 일상을 여행하며 더욱 행복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여행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에 큰 공감을 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책을 읽기 전부터 큰 흥미가 가진 않았다. 그럼에도 읽은 이유라면 여행을 즐기는 사람은 어떤 점에서 여행을 즐기게 되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저자가 말한 그 이유 속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유용함만을 기준 삼아 살아가는 일상생활 속에서 내가 바라는 사치 또한 무용한 시간이었다. 커피를 시키고 멍을 때리며 주변을 구경하는 일 같이 말이다. 일상 생활 속에서 틈틈이 이런 무용한 시간을 갖기란 쉽지 않다. 사회는 우리에게 자투리 시간 또한 활용하라며 재촉한다. 무용한 휴식 시간을 보내는 데에 죄책감마저 느끼기도 한다. 저자는 여행을 통해 본격적으로 무용한 시간이자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왔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나는 여행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가면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싫어한다고 오해하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집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낯설고 새로운 공간에 대한 환호와 설렘도 잠시 어디선가 불편한 부분들이 다시금 집으로 돌아오게 만들기도 한다. 여행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 여행을 왔으니 나는 알차게 이 24시간을 잘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강박관념이 여행을 피로하게 만든건 아닐까. 어릴 때 아무렇지 않게 학원을 가기전 골목길 한바퀴를 돌고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었지만 행복했다. 굳이 멀리 가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라 마음가짐에 따라,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에 따라 일상도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선택은 자신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시간과 공간을 선택하여 책임지면서 직조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직조는 우리의 선택과 책임에 따라 나타나는 여행의 무늬라는 것이다. 이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고 강조한다.

또한 저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꿈꾸는 사치는 여유로운 시간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무용한 시간은 유용한 시간보다 더 소중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매일 더 부지런한 동네 여행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멀리 떠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여행은 마음가짐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우리의 선택과 책임, 그리고 행복을 위한 여행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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